로텔(Rotel), 57년 엔지니어링이 빚어낸 가성비의 신화

오디오를 처음 시작해 제품 구매를 고민하게 되면 가장 먼저 눈여겨 보는 ‘숫자’는 역시 가격이고, ‘글자’는 역시 브랜드일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사운드가 뭔지도, 각 스펙의 의미가 정확히 뭔지도, 구매할 제품의 성능과 음질이 어느 수준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무작정 큰 돈을 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이 때 눈길이 먼저 가는 브랜드 중 하나가 바로 ‘로텔(Rotel)’이다. 필자 역시 그랬다. 출력과 왜율 등 스펙에 솔깃해져 가격표를 확인하면 당시로서는 ‘안드로메다’ 수준인 제품이 부지기수였고, 스펙과 가격이 합당하면 이번에는 '인지도 없는' 브랜드에 왠지 신뢰가 가질 않았다. 그런데 로텔은 스펙과 브랜드 인지도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가격대가 만만해보였다. 홍보용 사진이나 홈페이지를 보면 스피커의 귀족이라 할 영국 B&W와 공동 마케팅을 펼치는 듯해 더욱 신뢰가 갔다. 사실, 로텔을 영국 브랜드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꽤 많다.

 

 

"로텔의 57년 히스토리"

 

 

로텔은 1961년 대만인 토모키 타치카와(Tomoki Tachikawa)가 일본 도쿄에 ‘롤랜드(Roland)’라는 이름으로 설립했다. 그의 아들 밥 타치카와(Bob Tachikawa)를 거쳐, 현재 밥의 조카 피터 카오(Peter Kao)가 CEO로 있는 ‘패밀리 기업’이자 ‘일본 브랜드’인 것이다. R&D센터는 영국에, 공장은 중국 주해(Zhuhai)에 있다.

 

토모키 타치카와는 일본에서 유학하다 1950년대 초 오디오업계에 뛰어들며 일본에 정착했다. 처음에는 당시 인기 있던 미국산 실바니아(Sylvania) TV를 수입, 판매하는 딜러로 출발했다. 그런데 미국과 일본은 서로 다른 AC전압을 쓰던 상황이어서 일본 딜러는 제품의 전원부를 일일이 손봐야 했다. 로텔의 엔지니어링 DNA는 이 때부터 움텄고, 로텔이 지금도 트랜스포머를 비롯한 전원부를 그토록 강조하게 된 배경이다.

 

1961년 로텔은 딜러에서 손을 떼고 ‘롤랜드’라는 이름의 본격 오디오 제작사로 새 출발을 하게 된다. 하지만 1960년대에는 주로 타 브랜드에 완성품을 공급하는 OEM 방식이었고, 70년대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자사 제품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로텔은 얼마 후인 1973년 컨슈머 리포트로부터 자사 리시버 ‘RX-402’가 그해 ‘베스트 바이’로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다. 이때 최종 경합을 벌였던 두 제품도 로텔이 OEM한 모델. 결국 로텔의 기술력은 이미 초창기에 완성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국 B&W와 협업은 1981년부터 시작됐다. 1979년 ‘기본에 충실한 제품을 만들자’(Back-to-basics Product Plan)라는 로텔의 설계이념이 완성되자마자 파트너로 B&W를 선택, 영국에 R&D센터를 지은 것이다. 기본 엔지니어링은 일본 공장에서 하지만 핵심부품 선택 및 최종 음질튜닝은 영국에서 이뤄지게 된 것. 그리고 로텔의 북미 및 유럽 디스트리뷰터로는 B&W가 나섰다. 이러한 협업의 결과물이 바로 1982년에 나온 로텔의 인티앰프 ‘RA-820B’로, 이 제품은 나오자마자 영국 오디오전문지 ‘왓하이파이’의 ‘올해의 제품’으로 꼽혔다.

 

 

▴ 로텔의 두번째 CEO, 밥 타치카와(Bob Tachikawa)

 

 

B&W와 협업은 이후에도 계속 이어저 B&W는 2000년 영국에 ‘로텔 유럽(Rotel Europe)’을 설립, 북미를 제외한 모든 지역의 로텔 제품 판매 및 유지보수를 맡아오고 있다. 로텔 홍보용 팸플릿이나 홈페이지에 B&W 스피커들이 자주 등장하는 마케팅적 배경인 셈이다. 또한 2006년에는 한 해 전 완공한 로텔의 중국 공장 운영을 위해 로텔과 B&W가 조인트 벤처를 설립하기도 했다.

 

▴ 로텔의 현재 CEO, 피터 카오(Peter Kao)

 

 

한편 로텔이 홈씨어터쪽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한 것은 설립자의 아들인 밥 타치카와가 1980년대 후반 로텔에 합류하면서부터. ‘기본에 충실한 제품을 만들자’는 설계철학을 서라운드 프로세서, AV리시버, 멀티채널 앰프, DVD 플레이어로 확장시킨 것이다. 현 CEO는 밥의 조카인 피터 카오(Peter Kao)로 1999년부터 로텔의 홍콩 사무소와 중국 주해 공장 설립을 주도한 인물이다.

 

 

"로텔 가성비의 비결 “겉멋 대신 기본에 충실하자”"

 

 

로텔은 하이엔드 제품에 버금가는 스펙과 부품, 설계에도 불구하고 ‘착한’ 가격을 유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파워앰프 플래그십 ‘RB-1590’이 400만원대 초반, 프리앰프 플래그십 ‘RC-1590’과 CD플레이어 플래그십 ‘RC-1572’가 200만원대 초반, 인티앰프 플래그십 ‘RA-1592’가 200만원대 후반에 그친다. 하이엔드 스펙에 입문형 가격을 갖춘 제품으로 로텔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유다.

 

로텔의 이같은 가성비의 배경은 위에서 잠깐 언급한 ‘기본에 충실한 제품을 만들자’는 로텔의 설계철학 덕분이다. 1970년대 후반 들어 오디오의 양극화 현상, 즉 소위 ‘코스트 노 오브젝트’(Cost no object)를 앞세운 하이엔드와 비용절감을 최우선으로 한 양판형(Mass products) 제품 사이에서 로텔은 중도 노선을 선택했다. 이것이 바로 로텔이 그렇게나 강조해오고 있는 ‘밸런스 디자인 컨셉트(Balanced Design Concept)’다.

 

 

 

 

‘밸런스’라고 해서 노이즈 제거를 위한 +,- 신호 분리 전송 및 증폭 회로라고 짐작하면 오산. 로텔에서 말하는 밸런스 디자인 컨셉트는 가격대비 성능비 향상을 위한 기본 설계이념인 것이다. 핵심은 1) 좋은 소리는 웰메이드 엔지니어링에서 나오는 것이지 결코 값비싼 부품 투입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2) 그렇다고 비용절감을 위해 값싼 부품만 사용해서는 성능과 음질을 결코 기대할 수 없다로 요약된다. 로텔이 부품 선별과 회로 구성, 자체 품질관리를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 Rotel RB-1590 Stereo Power Amplifier

 

 

로텔 제품에 투입되는 부품의 수준은 상상을 초월한다. 토로이달 전원 트랜스포머를 자사 공장에서 일일이 제작하는 것을 시작으로, 영국산 슬릿포일(Slit Foil) 전해 커패시터, 일본산 루비콘(Rubycon) 전해 커패시터, 영국 웨일즈산 LCR 폴리스티렌 커패시터, 영국산 메탈필름 저항, 미국산 아날로그 디바이시스(Analog Devices)와 텍사스 인스트루먼츠(TI) IC 등을 선별해 사용한다. 이같은 자신감 덕분일까. 로텔은 각 모델에 투입된 부품들을 일일이 홈페이지에 공개한다. 이러한 제작사, 참 드물다.

 

최단경로, 그리고 좌우대칭(Symmetrical Signal Trace)으로 회로를 짜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물론 각각 음악신호의 미세한 뉘앙스 손실 방지와, 정교한 이미지 및 사운드스테이지 구축을 위해서다. 로텔의 모든 클래스AB 앰프가 출력 트랜스포머를 사용하지 않는 것도 트랜스에 들어가는 코일이 음질을 저하시킨다고 봤기 때문이라고 한다. 로텔은 또한 자사 공장에 표면실장(Surface Mount) 전용설비를 갖춘 몇 안되는 제작사이기도 하다. 이 경우 표면실장 기판 자체의 품질 관리를 비롯해 여러 면에서 유리하다.

 

 

 

"로텔 라인업 : 2채널 앰프와 CDP를 중심으로"

 

 

현재 로텔 라인업은 크게 2채널 시스템이라 할 ‘뮤직시스템(Music System)’ 라인업과 AV 시스템인 ‘홈씨어터(Home Theater) 라인업, 그리고 멀티룸 시스템인 ‘홀 하우스 오디오(Whole House Audio) 라인업으로 구분된다. 이중 오디오파일이 관심을 쏟는 ‘뮤직시스템’ 라인업을 간략히 살펴본다.

 

‘뮤직시스템’ 라인업은 인티앰프(RA-1592, RA-1572, A14, A12, A10), 프리앰프(RC-1590, RC-1572), 파워앰프(RB-1590, RB-1582 MK2, RB-1581, RB-1552 MK2), CDP(RCD-1572, CD14), 튜너(RT-1570, T14, T11)로 나뉜다. 앰프 플래그십은 ‘159’, CD와 튜너 플래그십은 ‘157’로 시작함으로 알 수 있다. 로텔이 CD플레이어를 생산한 것은 1985년부터, 상위 ’15’ 시리즈를 출시한 것은 2009년부터다.

 

 

 

"프리앰프 ‘RC-1590’"

 

 

32비트/768kHz 사양의 AKM 프리미엄 DAC칩을 장착한 디지털+아날로그 입력 프리앰프. USB입력시 24비트/192kHz PCM은 물론 DSD까지 지원한다. 디지털 파트와 아날로그 파트 각각에 전원을 공급하기 위해 듀얼 토로이달 전원 트랜스를 장착했고, 밸런스 입출력을 지원한다. 이밖에 MM포노스테이지와 블루투스(aptX), 헤드폰 출력을 마련한 팔방미인 플래그십 프리앰프다. 디지털 레귤레이터 회로에는 충방전 시간이 빠르고 신호손실이 적은 슬릿포일 커패시터를 비롯해 TI제 정밀 볼륨 컨트롤IC 등이 투입됐다.

 

 

 

 

"프리앰프 ‘RC-1572’"

 

 

플래그십 ‘RC-1590’에 투입된 기술력을 이어받으면서 전원부 구성을 다운사이징시키고 입출력 단자수를 줄여 가격을 낮춘 차상위 모델이다. 한 개의 대형 토로이달 전원 트랜스가 디지털, 아날로그 두 파트에 모두 전원을 공급하며 전해 커패시터 용량도 줄어들었다. 하지만 신제품인 만큼 디지털 파트 성능은 오히려 업그레이드돼 PCM 음원의 경우 USB 입력시 최대 32비트/384kHz까지 지원한다. MM포노, 블루투스, 밸런스 입출력 지원은 동일하다.

 

 

 

 

"파워앰프 ‘RB-1590’"

 

 

출력단에 바이폴라 트랜지스터를 투입, 푸쉬풀 구동으로 채널당 350W(8옴 기준) 출력을 내는 클래스AB 증폭의 스테레오 파워앰프다. 듀얼 토로이달 트랜스와 특주 슬릿포일 커패시터 등 역시 전원부에 큰 공을 들였으며, 밸런스/언밸런스 입력단자 1조씩을 마련했다. 스피커 AB 출력이 가능한 점도 눈길을 끈다. 게인은 언밸런스 입력신호시 27.5dB, 밸런스 입력신호시 23.5dB이며, 입력임피던스는 12k옴(RCA), 100k옴(XLR)이다. THD 0.03%, SNR 120dB, 댐핑팩터 300 등 스펙은 이미 하이엔드다.

 

 

 

 

"파워앰프 ‘RB-1582 MK2’"

 

 

클래스AB 증폭으로 8옴에서 200W 출력을 낸다. 초대형 토로이달 트랜스 1개와 6만 마이크로패럿 용량의 슬릿포일 커패시터를 갖췄다. 좌우 신호증폭 채널이 듀얼 모노 구성인 점은 플래그십 ‘RB-1590’과 동일하다. 채널당 10개의 고전류 바이폴라 트랜지스터를 출력단에 투입했고, 모든 접지는 구리 그라운딩 플레이트 위에 스타 패턴으로 마감됐다. 게인은 26.5dB(RCA), 22.5dB(XLR), 입력 임피던스는 ‘RB-1590’과 동일한 12k옴(RCA), 100k옴(XLR)을 보인다. THD 0.03%, SNR 116dB. 댐핑팩터는 무려 800에 달한다.

 

 

 

 

"파워앰프 ‘RB-1552 MK2’"

 

 

역시 바이폴라 트랜지스터, 클래스AB로 8옴에서 130W를 낸다. SNR은 120dB, 댐핑팩터는 450을 보인다. 토로이달 전원트랜스, 슬릿포일 전해 커패시터 구성. 밸런스 입력단자도 갖췄다.

 

 

 

 

"인티앰프 ‘RA-1592’"

 

 

‘RC-1590’ 프리앰프와 ‘RB-1582 MK2’ 파워앰프를 싱글 섀시에 담은 인티앰프. 클래스AB 증폭으로 200W를 뿜어내며, AKM DAC칩을 장착해 USB 입력시 24비트/192kHz PCM 음원은 물론 DSD까지 지원한다. 물론 로텔 제작 토로이달 전원트랜스와 특주 슬릿포일 커패시터 구성의 전원부를 투입했다. 블루투스, AB스피커 출력, 밸런스 입력, MM포노 입력도 가능하다. 프리아웃 및 듀얼 서브우퍼 출력도 마련됐다. SNR은 103dB(라인), 102dB(디지털), 80dB(포노), 출력 임피던스는 100옴, 댐핑팩터는 600을 보인다.

 

 

 

 

"인티앰프 ‘RA-1572’"

 

 

120W 출력에 디지털 및 MM포노 입력, 블루투스 기능을 갖춰 최근 출시된 인티앰프다. 신제품인 만큼 USB 입력시 PCM음원을 최대 32비트/384kHz까지 지원하는 점이 가장 눈에 띈다. 아이폰 등 다양한 음악저장 장치를 쉽게 연결할 수 있도록 전면 패널에 USB 입력단자를 마련한 점은 편의성 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전원부에는 슬릿포일 커패시터 대신 내구성이 뛰어난 T-네트워크 커패시터를 투입했으며, SNR은 100dB(라인, 디지털), 80dB(포노), 댐핑팩터는 300을 보인다.

 

 

 

 

"CD플레이어 ‘RCD-1572’"

 

 

새롭게 설계 및 제작된 CD메커니즘과 울프슨제 프리미엄 24비트/192kHz DAC칩(WM8740)을 채용한 CD플레이어 신상. 로텔의 앰프와 마찬가지로 CD플레이어에도 로텔 제작 전원 트랜스와 슬릿포일 커패시터로 구성된 전원부가 투입됐다. 출력 레벨은 2.2V(RCA), 4.7V(XLR), 출력 임피던스는 100옴(RCA), 200옴(XLR), 75옴(동축).

 

이밖에 로텔의 AV 모델 중에서는 4K/UHD 비디오 패스쓰루가 가능한 7채널 100W 출력의 서라운드 리시버 ‘RAP-1580’, 5채널 200W 출력의 멀티채널 파워앰프 ‘RMB-1585’(듀얼 토로이달 트랜스), 5채널 120W 출력의 멀티채널 파워앰프 ‘RMB-1555’(싱글 토로이달 트랜스) 등이 눈길을 끈다. 멀티존 오디오의 커스텀 스피커 구동을 위한 디스트리뷰션 앰프 중에서는 8채널에 클래스D 증폭으로 100W를 공급하는 랙마운트형 ‘RKB-8100’이 단연 압도적이다.

 

 

 

"총평"

 

 

로텔의 수입사가 지난해 4월 로이코로 바뀌었다. 로이코가 B&W 수입사인 점과, 로텔과 B&W의 끈끈한 협업 히스토리를 떠올려보면 이제서야 비로소 아귀가 맞는다는 느낌이다. 전면을 수놓은 수놓은 작은 버튼들(프리, 인티)과 전면에 슬릿 모양으로 난 통풍구(파워)는 로텔을 관통하는 디자인 아이엔티티. 듀얼 모노를 기본으로 필요할 때마다 적절히 격벽처리를 한 꼼꼼한 내부 설계디자인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자사 제작 전원트랜스를 바탕으로 한 튼실한 전원부와 최단 신호경로, 고품질 부품의 선별 투입, 가격대가 믿어지지 않는 넉넉한 클래스AB 출력이야말로 지금의 로텔을 규정짓는 진정한 키워드다. 일체의 착색이나 가감이 느껴지지 않는 스트레이트한 음색을 보장하면서도 대형 스피커에 물릴 수 있는 앰프가 바로 로텔이다. 맞다. ’기본과 정석에 충실한 오디오를 보다 쉽게 접근가능한 가격대로 선보인다’, 이것이 57년 엔지니어링을 관통하는 로텔 사운드의 핵심인 것이다.

 

- 김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