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컨트럴을 통해 사운드 밸런싱의 모범을 제시한다, 킴버 케이블
이십 년 쯤 되었을까, 필자는 수유리 근처에 작은 집에서 독립된 생활을 시작했다. 지금 사는 집에 비하면 아주 작은 집의 3층에 살았는데, 층간 바닥의 두께가 얇은 탓에 아이들이 놀러 와 뛰어다닐 때면 바닥이 울리는 것이 몹시 불쾌했을 뿐더러 그 상황을 견디기가 무척 힘들었다. 나는 그 이유를 미국에서 경험했던 지진 덕분에 알게 되었다. 우리는 단단한 땅 위에서 견고하게 두 발을 딛고 살아간다고 굳게 믿고 있다. 그리고 바다 위를 달리는 여객선 위에서 견딜 수 있는 것은 곧 단단한 땅 위로 올라갈 것을 미리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굳게 믿고 있는 대지가 제멋대로 흔들거리는 것은 사고방식에의 엄청난 도전이요 방자한 일탈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진으로부터 공포와 불쾌함을 느낀다. 경험을 해 보신 분은 알겠지만 지진은 정말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다. 나는 음악을 듣는 경우에도 과도한 저음을 피하는 편이다. 이는 AV 에도 해당되어 서브우퍼의 게인을 최소화 해 놓고 영화를 감상한다. 가급적이면 소리는 귀로 듣고자 하며, 기타 불필요한 진동이 바닥을 통해 발바닥이나 엉덩이로 전해지면 무척이나 불쾌해지곤 한다. 혹자는 가슴으로 음의 진동을 느낀다고 하지만, 나는 그저 귀로 듣는 게 더 좋을 때가 많다.
지금은 사용하고 있지 않지만 킴버의 셀렉트 시리즈를 오래 사용했었고, 물론 아직도 이들 제품에 대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저역을 통제하는 특성이 대부분의 제품에서 묻어나고 있는데, 바로 이러한 점에서 필자는 킴버가 대단한 회사라고 생각한다. 스피커 케이블이나 싱글엔디드, 혹은 XLR 의 인터코넥트, 재질이 은이거나 혹은 구리이거나, 더 나아가 단자의 재질과 형상이 전혀 다름에도 불구하고, 전체 제품을 통틀어 저역을 통제하는 공통된 특성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이 좀처럼 믿어지지 않는다. 그 점 하나만으로도 이 회사의 기술력과 소리에 대한 철학은 충분히 대접받을 자격이 있다.
공교롭게도 이 회사에서 가장 최근에 출시된 레퍼런스급의 인터코넥트 두 종에 대한 리뷰를 맡아 시청하게 되었다. RCA 타입의 싱글엔디드 KS1036 과 밸런스 타입의 KS1136 이 그것으로서, 이 두 케이블은 각기 1030 과 1130 에서 개량된 제품이며 순은 선재가 더 많이 투입되었다고 한다. 이제 케이블에 순은을 채용하는 것은 고급 케이블의 기본적인 설계사상이 되어버렸나 보다. 그러고 보니 내가 사용하는 모든 케이블이 순은제로 바뀌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인지 이 케이블의 음향특성이 그리 낯설지 않았다. 게다가 앞서 말했듯이 필자는 킴버의 소리에 무척 익숙한 편이기도 하다.
나는 고급 오디오의 외양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과거에는 디자인과 색상, 촉감 등 외관 그 자체에 많은 의미를 부여했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지금은 디자인의 요소가 음질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확신이 더해졌을 뿐이다. 고가의 기기들은 합당한 외관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KS1036 의 싱글엔디드 단자는 WBT 의 은단자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WBT 의 순은제 단자는 확실한 음질 특성을 보장하는 고급 RCA 단자의 대명사이므로 딱히 첨언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다만 이 WBT 단자는 기기쪽의 단자를 세 개의 발이 움켜쥐는 듯한 모양으로 연결되는데, 문제는 이 세 개의 발 가운데 하나만이 은제 도체라는 점이다. 나머지 두 개는 플라스틱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기에 연결했을 경우 완전히 고정되어 있는지 반드시 확인해 보는 것이 좋다. 헐거워져 있는 경우, 자칫 그라운드부가 떨어지는 경우, 혹은 완전히 오픈 서킷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으며, 이러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굉음을 동반하거나 기기에 치명적인 충격을 안겨 복구할 수 조차 없는 황망한 사태를 초래할 수도 있다.
킴버 특유의 목재 시그너처가 매달려 있는 것은 두 제품 모두 만족스럽다. 특히 밸런스 단자는 매우 고급스러운 마감으로 마감되어 있어 특히나 소유욕을 자극한다. 케이블 자체의 외피는 그저 까칠하게만 마감되어 있지만 특유의 품위 넘치는 회색 계열의 색깔을 띄고 있어 한층 품격 높은 자태를 뽐내는 동시에 아주 잘 휘어지므로 설치 또한 수월하다.
본격적으로 이들 케이블의 소리 특성을 확인하기 위해 몇 장의 소스를 골라보았다. 딕 하이만 스윙 앨범과 에이지 오우가 지휘한 명상곡 모음집 (Reference Recording), 그뤼미오가 연주한 베토벤 바이얼린 협주곡 D 장조 (PentaTone), 캐서린 배틀이 부른 So many stars(Sony Classical), 비스펠베이가 연주한 하이든 첼로 협주곡 C 장조 (Channel Classics), FIM 샘플러 디스크, 빌헬름 켐프가 연주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DG) 등이다 .
이 정도면 각 장르 및 편성에 따른 제품의 특성을 파악하기에 충분하리라 생각한다. RCA 케이블은 소스와 프리, 그리고 프리와 파워에 각각 연결하며 시청했고 밸런스 케이블은 소스와 프리에 연결하여 시청했다. 이 케이블들이 얼마나 사용된 것들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약 20 시간 정도의 시청이 이루어졌고, 시청도중에 음색의 변화가 나타나지는 않았다.
전체적으로 이번 시청은 킴버의 사운드 블랜딩 기법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이 시리즈의 케이블을 사용하기로 결심했다면 그것이 RCA 던 밸런스이던 음질 면에 있어서 차이는 없다고 보면 되겠다. 그저 취향과 기기의 사양에 맞추어 사용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 여기에 킴버의 음색을 좋아하고 이해하는 사용자라면 금상첨화라고나 할까. 문제는 그 킴버 특유의 음색이라는 것에 대해서 할 말이 많아지는 데에서 비롯한다.
만일 자신의 시스템에서 콸콸 쏟아지는 저역 때문에 고생하는 애호가라면 두 말 하지 않고 킴버를 사용하면 해결될 것이다. 저역을 통제하는 능력에서 킴버는 발군의 실력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지금은 내 손을 떠나가버린 마크레빈슨의 소리가 자꾸만 연상된다. 킴버 케이블은 저역을 움켜쥐는 능력에 있어서 탁월한 소질을 발휘한다. 소위 투명하고 무게 있는 저음보다는 단단하고 치고빠지는 듯한 저음을 추구하며 저역을 완벽하게 통제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당연히 고역에도 그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까칠한 고역의 끝부분이 둥글게 무뎌지는 결과를 동반하게 된다. 그러나 중고역의 이미지와 포커싱 자체가 대단히 충실해 지기 때문에 표준적이고 중립적인 사운드가 만들어진다. 이런 음색이 필자에게는 마크레빈슨의 이미지로 남아 있다.
캐서린 배틀의 So many stars 에는 고역의 높은 부분에서 간드러지는 음향들이 재미있게 가미되어 있다. 이 음반을 소위 하이엔드 시스템으로 들으면 선뜻선뜻한 칼날로 횟감을 요리하는 그런 느낌까지 들곤 한다. 그러나 킴버의 KS1036 이나 KS1136 케이블은 이 음반을 좀 다른 느낌으로 연주해 낸다. 오목렌즈로 바라보는 세상과 같다고나 할까? 전체적인 스케일은 좀 작아질 지도 모른다. 사실 바이올린 협주곡을 듣다보면 무대가 독주 악기에 비해 어느 정도 작아지는 느낌도 들게 된다. 이러한 느낌은 전적으로 중고역의 밀도가 충만해지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딕 하이만의 빅밴드를 들으면 이와 같은 느낌 때문에 처음엔 조금 투덜거릴 지도 모르겠다. 만약 이런 일이 생긴다면 볼륨을 약간 올려서 듣기를 권한다. 농밀해진 중고역과 통제된 저역은 대음량으로 갈수록 짜임새가 좋아지고 사운드가 폭신해지는 느낌이 들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초고역이 아주 약간 탁하게 말라드는 느낌이 생기는 것은 이 가격대 케이블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만일 마크레빈슨의 사운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피아노 보다는 현악의 완성도를 추구한다면, 진공관 보다는 TR 파워앰프의 강력한 파워를 즐기는 애호가라면, 몸뚱이가 부릉부릉 떨리는 저역의 쏟아짐을 즐기기보다는 단정하고 모범적인 깔끔한 사운드를 원하는 애호가라면, 제품의 완성도로 보나 브랜드의 신뢰성으로 보나 더 이상의 장고가 필요 없을 정도의 가치를 지닌 제품이다. 게다가 이미 킴버 케이블의 사운드 철학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최고의 경험을 추구한다면 반드시 도전해 볼 만한 가격대이기도 하다. 손 끝에서 이미 하이엔드의 품격을 느낄 수 있고 귀를 통해 명품으로서 최고의 완성도임을 확인할 수 있는 제품인 만큼, 구입 이후의 음향적 완성은 사용자의 몫으로 남아 있다.
|
